드디어 다 읽었다. 엄밀히 말하면 로마의 사회기반시설(Infrastructure)에 대해 다룬 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읽지 않았지만, 어쨌든 로마의 역사를 다룬 부분은 다 읽었다. 중3 겨울방학때 처음 책을 접하고 9권까지 단숨에 읽어 나간 뒤,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지막 권을 읽게 되었다. 물론 매년 초마다 새 책이 나올 때마다 바로바로 도서관서 빌려 읽는 센스는 잃지 않았다.
사실 장구한 로마 역사를 마감하는 책으로서는 이 책은 포스가 많이 부족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하여 좀더 자세히 알게 된 (서)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은 허무함 그 자체였다. 제국의 방위선은 이미 무너진 채, 계속되는 야만족의 침입과 내란으로 힘을 소모한 로마 제국은 단지 한 용병대장이 황제를 폐위하고 그 다음 황제를 세우지 않음으로써 멸망했다. 긴 역사와 넓었던 영토에 정말로 걸맞지 않은 이런 허무한 최후로는 아무리 필력이 뛰어난 시오노 나나미도 멸망 과정을 멋있게(?) 서술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왜 멸망했는가에 대한 연구서는 충분히 많기에, 자신은 어떻게 멸망했는가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하지만, 독자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왜 로마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어야 했는가라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에 "로마는 로마가 아니게 된 순간부터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왠지 순환논증 비슷한 답 외에는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방대한 로마 역사를 이렇게 정리해서, 읽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1년에 한권씩 꼬박꼬박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은 시오노 나나미 밖에 없을 것이다. 대작의 완성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