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탄생(이희재 저), p320~p324에서 발췌

 

'끈힘업시'를 '끊임없이'로 적은 것은 국어학자들이 한국어의 형태소를 명확히 분석해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다양한 받침을 적을 수 있는 한글의 장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른다'라는 뜻을 가진 형태소 '끊'을 파악하여 글자에 담아낸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인은 이제 '끊'이라는 형태소와 '끈'이라는 형태소를 구분합니다. 마찬가지로 '없'이라는 형태소와 '업'이라는 형태소도 구분합니다. 맞춤법을 지킨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형태소를 지킨다는 뜻도 됩니다. 맞춤법이 흐트러지면 형태소도 무너집니다. (중략)

 

한글은 방향이 거꾸로입니다. 처음에는 소리 글자였지만 점점 뜻 글자로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받침이고 형태소이고 맞춤법입니다. 발음은 모두 [낫]으로 나지만 모습은 각기 다른 글자들을 볼까요. '낟'은 낟알의 '낟', '낫'은 벼 베는 '낫', '낮'은 어둡지 않은 '낮', '낯'은 뻔뻔스러운 '낯', '낳'은 새끼 얻을 '낳'. 어떤 사람들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편하게 '낫'이라고 통일하면 되지 뭐하러 복잡하게 맞춤법을 따지느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건 그리 볼 일이 아닙니다. 일본 글자 '가나'에서는 아무리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어도 발음도 표기도 가령 '나쓰'라고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구별을 하려고 자꾸만 한자에 기댔던 겁니다.

 

한글은 좋은 소리 글자이자 좋은 뜻 글자입니다. <한불자전>에 '빗최다'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예문에 '거룩한 빗차로 내마암을 빗최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현대 한국어 같으면 '거룩한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사'라고 했을 겁니다. 글자를 모아서 적어주었기 때문에 '빛'이라는 형태소가 살아났습니다. 소리 나는 대로만 적었다면 '빗'은 소리 글자에 머물렀겠지만 모아 적기를 하고 받침을 정확히 살렸기 때문에 '빛'이라는 뜻 글자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맞춤법이 자꾸만 흐트러지면 한글은 '가나'처럼 머지않아 다시 한자에 기대야 할지도 모릅니다. 맞춤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한글의 잠재력을 지키고 키워 나가는 지름길입니다. (중략)

 

맞춤법을 지키는 이유는 원어에 충실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료한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

복잡한 한국어 맞춤법에 저런 깊은 사항들이 숨어있는지는 몰랐네요. 요약하자면,

 

1. 맞춤법은 단어의 어원을 찾아 형태소를 밝혀내어 정한 것이다.

2. 형태소를 밝혀 내어 적는 끊어적기를 한 덕분에, 원래 소리글자로 출발한 한글이 뜻글자의 역할도 겸할 수 있게 되었다.

3. 그런데 맞춤법이 흐트러지게 되면 형태소도 무너지게 된다.

4. 형태소가 무너지고 이어적기로 돌아가게 되면 한글 표기만으로 쉽게 의미 구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5. 그래서 한글도 다시 한자에 기대야 하는 상황으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