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0
여행의 마지막날이 되었다. 눈발이 약해지긴 했지만, 괴레메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안심이 되질 않았다. 왜냐하면 카파도키아부터 귀국까지 내 일정이 (악천후에 취약한 비행기로) 촘촘히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 내가 이용하려던 항공편이 결항된 것도 나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공항까지 셔틀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미리 연락이 오니까, 그리고 고속버스라든가, 근처의 다른 공항인 카이세리 공항의 항공편이라든가 대안이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어쨌든 상황의 경과를 지켜 보는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 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했다. 일단 9시쯤 공항까지 셔틀이 운행한다는 얘기를 들은 뒤, 숙소를 나왔다.
공항 셔틀 시간이 10시였기에 시간이 굉장히 애매했다. 민박집 사모님께서 추천해준 대로 괴레메 야외 박물관까지 이어지는 길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걷고 오기로 했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길을 헤매었으나 곧 현지인에게 물어 길을 찾았다. 한적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카파도키아 여행을 마무리하는 곳으로 부족함은 없었다. 이전까지 보았던 것들과 또다른 모양의 기암들이 나를 매료시켰고, 들판위에 넓게 펼쳐진 설원도 내 마음을 울렸다. 아침에 혼자서 구경하는 풍경이라서 그런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9시 15분까지 걷다가 방향을 돌려 숙소로 되돌아왔다. 숙소에서 잠시 쉬면서 공항 셔틀을 기다렸다. 그런데 미리 알려준 셔틀 시각인 10시 10분이 되어도 셔틀이 나타나질 않았다. 갑자기 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숙소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셔틀은 눈길에 잠깐 사고가 나서 늦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초조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10시 반, 드디어 셔틀버스가 왔다. 셔틀이 왔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지만 다른 걱정이 곧 솟아올랐다. 비행기는 그 특성상 넉넉한 여유시간을 남기고 공항에 도착해야 되는데, 셔틀이 온 시각으로 볼 때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셔틀버스는 나를 태우고도 괴레메의 다른 숙소에 들러 손님을 태웠고, 10시 45분쯤에야 괴메레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시각이 11시를 넘어가자 조금씩 속이 타기 시작했다. 계속 창밖을 쳐다보며 공항이 언제 나타나나 쳐다보았다. 11시 반에 드디어 네브쉐히르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체크인과 보안검색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 또한 지연이었다.
생각보다 승객이 많았다. 12시 20분쯤 드디어 비행기는 이륙했고, 나는 이스탄불로 무사히 가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비행기 역시 기내식이 나와서 기내식을 먹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을 계속 고민했다. 이틀 반을 머무르며 생각보다 많은 곳을 이미 가본 상태였고, 이스탄불 도착 후 출국하기까지 남은 시간도 애매했다. 처음에는 돈도 남으니 하맘을 이용해볼 까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터키에서 다른 싼 하맘도 많은데 이스탄불에서 90~100TRY가까운 돈을 쓰는 것이 아깝기도 했다. 계속해서 변덕을 부리다 결국 하맘은 가지 않기로 했다.
한시 반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나는 먼저 국제선 터미널로 향했다. 미리 귀국편 항공기의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터키 공항이어서 그런지 출발까지 시간이 훨씬 남았지만 터키항공의 카운터는 있었고, 생각보다 줄도 길진 않았다. 이른 시각에 체크인이 될까 걱정했었는데 체크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드디어 비상구열 좌석을 받을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철을 탔다. 공항에서 종점인 악사라이역까지는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역에서 나와 천천히 북쪽으로 걸었다. 발렌스 수도교를 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활기차고 식당과 상점도 많았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다. 이집시안 바자르를 가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남쪽으로 가는 길을 들었다. 갑자기 도로에 트램이 보여서 확인해보니 배야짓 광장이었다.
그랜드 바자르나 뉴로스마니예 거리를 뚫고 걸어 올라갈까 하다가, 배낭이 무겁기도 하고 돈이 예상보다 남기도 했으므로 트램을 타기로 했다. 에미뇨뉴 역에서 내렸다. 처음에는 이집시안 바자르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으나 예니 자미 주변을 잘 수색하자 이집시안 바자르의 입구가 보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집시안 바자르를 간 이유는 구경 겸 필요한 경우 기념품으로 사 갈 로쿰과 터키 차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오히려 베야짓 광장의 번화가에서 큰 슈퍼마켓 등이 있다면 그곳에서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뭐에 홀린 듯 이집시안 바자르에서 기념품들을 잔뜩 샀다.
걷다가 상점 직원 이 불러 세우면 "Merhaba"라고 인사해주고 가게로 들어가 로쿰도 몇개 맛보고, 얘기도 나누고, 그러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그냥 돌아서고 그러고 했다. 나도 조금씩 흥정에 기술이 붙어서 1Kg 단위로 파는 것을 반 킬로만 팔라든가, 두 개를 살 테니 더 깎아달라든가 등의 제안을 해서 관철시켰다. 어느새 터키 문화에 조금 물들었나 그들이 자주 쓰는 "my friend"라는 표현을 나도 서슴없이 썼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몇 개 얘기해보자면 나에게 "아저씨"라고 말을 걸자 내가 "나 아저씨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그냥 지나치니 뒤에서 "그럼, 할아버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그땐 뒤돌아서 욕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참았다. 다른 한 가게에서는 터키 차를 물어봤다가 그냥 나왔는데 그 가게 앞을 다시 지나게 되었다. 직원이 좀 더 낮은 가격을 제안했는데, 내가 다른 곳에서 이미 샀다고 하니 "바람둥이"라는 말이 되돌아왔다...그 외에도 한국에서 왔다면 어김없이 강남스타일 얘기가 나와서 몇 번 말춤을 추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터키 흑차와 사과차 2박스, 로쿰 1박스, 초콜릿 과자 1박스, 올리브 비누 1개를 사서 이집시안 바자르를 나왔다.
다시 베야짓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되네르 케밥을 골랐다. 아쉽게도 식당 선택이 썩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남은 돈을 환전했다. 기념으로 25쿠루쉬와 5쿠루쉬 동전 두개만 챙기고, 나머지를 모두 USD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40USD를 받았다. 1.5TRY를 돌려주는 것을 그냥 가지라고 했다. 어차피 이제 나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악사라이 역까지 걸은 뒤, 악사라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왔다.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았다. 한번 아타튀르크 공항 국제선 터미널을 한번 둘러본 뒤,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면세점을 둘러보며 간단히 쇼핑을 했다. 유럽에서 봤던 로레알의 50ml짜리 쉐이빙 폼이 보여서 사고, 선물로 살 담배를 샀다.
그러고 나니 어깨가 슬슬 아파오며 목이 말랐다.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일지를 썼다. 일지를 마무리 짓고 계속 공항을 방황하며 귀국하는 항공편의 게이트 정보가 뜨기를 기다렸다. 11시 반쯤, 게이트 정보가 뜨자 그 쪽으로 이동해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탑승이 시작되었고, 새벽 1시에 비행기는 마침내 힘차게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