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5

 

내가 묵은 숙소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난방이 라디에이터라는 점이었다! 나는 추위에 떨다가 밤중에 갑자기 양말을 꺼내어 신는 촌극을 벌이고, 그러고도 추위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잤다.

 

예상외로 민박은 교통편이 좋았다. 나가서 10분만 걸으면 기차역이 나오고, 거기서 셀축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 시간이 8시여서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아침은 먹지 않고 중간에 열린 빵집에서 빵 하나를 샀다.

 

셀축까지는 원래 한 시간이 걸리는데, 예정된 시간을 넘겨 셀축 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을 나서니 곧 셀축 거리가 펼쳐쳤다. 이스탄불과는 다른 느낌의 생기가 넘치는 거리를 걸으며 에페소스 유적 터로 이동했다.

 

관광안내소에 들러서 지도를 얻으려고 했는데 관광안내소가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이드북의 지도를 참고해 이동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유적의 남쪽 입구로 갈까 했으나 무작정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것은 좀 그래서, 이종표도 보이고 거리도 좀 가까운 북쪽 입구로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에 들어섰다. 입구에서 엽서 파시는 분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서는데……갑자기 개 짖는 소리와 함께 개 세 마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몸집도 좀 있는데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나 몰려드니 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낮에 관광객들 좀 있을 때 오면 이런 일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아르테미스 신전 터를 지나치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의외로 에페소스 유적까지 가는 길이 꽤 되었다. 거의 30분을 걸어야 대로에서 유적 입구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거기서 다시 걸어가는데 '잠자는 7인의 동굴'의 이정표가 나왔다. 그래서 거기로 먼저 갈 까 하다가, 거리도 멀어 보이고 가이드북에 (2011년 기준이긴 하지만) 현재 일시 폐쇄중이라고 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한 10분 가량 굽은 길을 따라 걷자 드디어 에페소스 유적의 입구가 나왔다.

 

입장료를 내고, 오디오 가이드를 받았다. 처음에는 오디오가이드가 잘 작동하질 않아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기기의 스크린이 감압식 터치스크린이었다. 손톱으로 꼭꼭 누르니 잘 인식했다.

 

안내를 귀로 들으며 천천히 에페소스 유적을 구경했다. 뭔가 강렬한 인상은 없지만, 유적을 거닐다 보니 고대인의 생활이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잘한 건물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위용을 자랑하는 대극장(The great theater)이 가장 인상깊었다. 그 동안 보았던 반원형 극장(Amphitheater) 중에 가장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은 걸릴 것이라던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한 시간이 좀 넘어서 남쪽 입구에 도달했다. 유적을 나와 셀축 시내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실 유적에서 셀축 시내로 가는 방향은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길은 평지였다. 그렇지만 정말 한참을 걸어야 했다. 유적을 나와 양 옆으로 들판과 농장이 펼쳐진 시골길을 한참 걸어야 대로가 나왔고, 다시 대로를 한 참 걸어서 간신히 셀축 시가지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45분이나 걸었다.

 

12시가 다 되었기에 식당을 찾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시내는 시장이 한창이었다. 식당에서 셀축에서 유명하다는 찹쉬쉬를 시켜먹었다. 확실히 터키는 고기 맛이 다른 것 같다. 한국에서 먹은 양꼬치와는 맛이 달랐다.

 

점심을 먹고 오토가르로 갔다. 셀축에서 구경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기에 근처의 쿠샤다시로 가기 위해서였다. 돌무쉬를 처음 타 봤다. 미니밴은 의외로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거쳐 쿠샤다시로 들어섰다. 멀리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해안가에 호텔 등 여러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쿠샤다시에 도착했다. 어디서 내려준 것인지 처음에는 몰라서 당황했으나, 어차피 내가 가고자 하는 규베르진 섬은 해안가에 있으니, 바닷가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도시가 생각보다 번화했다. 이런저런 상점들도 꽤나 많았고, 맥도날드 등도 눈에 띄었다. 어찌어찌 방향을 잘 잡으니 변화가를 통과해 해안가에 도착했고, 왼편에 규베르진 섬이 보였다.

 

조금 기분좋은 일이 있었다. 규베르진 섬이 보이자 나는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소녀 두명이 걸어오고 있어서 그들에게 부탁을 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터키어로 고맙다고 말을 했더니(나는 여행가면 현지어를 조금이나마 익혀서 쓰려고 노력한다. 특히 인사말과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는 말은 꼭), 두세 발짝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Can you speak Turkish?"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No."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그녀는 다시 돌아섰지만, 왠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 보였다. 아마 기분 탓이리라.

 

규베르진 섬은 생각보다 큰 감흥은 없었다. 성채는 공사중이라 그런지 철골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려 했지만 평범하게 되어 있던 길이 갑자기 중간쯤부터 이상하게 변했다. 어떻게든 한 바퀴를 돌 까도 생각했지만,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다시 돌아섰다.

 

쿠샤다시를 보는 데도 많이 걸리진 않았다. 두시 반 경에 셀축으로 돌아가는 돌무쉬를 탔다. 셀축에서 이즈미르로 가는 기차가 4시와 6시에 있는데 4시 것을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에 다시 셀축에 도착했다. 아침에 보지 못한 아르테미스 신전 터를 보러 갔다. 엽서 파는 아저씨는 여전히 있었지만 개는 이제 없었다. 신전 터를 한번 둘러보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게임 문명하고 로마 토탈 워 때문에 많이 들어본 탓인지, 돌아보는 느낌이 묘했다. 한때는 고대 7대 불가사의였는데 기둥 하나와 함께 터만 남은 모습에서, 길재의 시조가 떠올랐다.

 

그렇게 셀축 구경도 모두 끝마치고, 4시에 기차를 타고 이즈미르로 다시 되돌아왔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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