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

 

이스탄불부터 여행일정이 약간 꼬였다. 원래 계획은 가까운 구시가지를 첫날 둘러보고, 둘째 날 돌마바흐체 궁전과 신시가지를 둘러 보고, 시간 여유에 맞춰 나머지를 꿰어 맞추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돌마바흐체 궁전이 목요일 휴관이기 때문에, 신시가지 쪽을 먼저 보러 갈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러 갈 거면 루멜리 히사르도 갈이 보러 가는 편이 여정 상 유리한데, 루멜리 히사르는 이날(수요일) 휴관이었다. 꼬여버린 일정을 원망하며 나는 일단 오늘은 신시가지 쪽을 둘러보고, 루멜리 히사르는 3일째 되는 날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술탄아흐멧 역에서 트램을 타고 카바타시 역에서 내린 뒤, 돌마바흐체 궁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관광객 인파와 섞여 상큼한 바닷바람 내음을 맡으며, 언덕길을 올라 돌마바흐체 자미를 지날 때만 해도, 나는 매우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는 곧 깨졌다.

 

돌마바흐체 궁전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줄이었다. 줄도 길었지만, 문제는 줄어드는 속도가 느린 데다가 기다려야 할 곳이 많았다. 맨 처음 입구에서 보안검색을 위해 한 번, 그리고 표를 사기 위해 또 한 번, 그리고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첫 건물인 셀랄륵에 들어가니 무려 열두시가 넘었다. 다행히 기다림의 대가는 충분히 했다. 건물 내부는 화려했고, 유럽의 궁궐들과 뭔가 비슷하면서도 독특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바다 방향으로 창이 나 있는 방의 경우 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도 굉장히 멋있었다.

 

셀랄륵 구경이 끝나고 곧바로 하렘을 구경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이름과는 달리 별 것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오히려 왕족들의 사적인 공간이기에, 더 수수한 면이 있는 것 갈았다.

 

돌마바흐체 궁전을 관람하며 특이한 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비닐을 덧씌워야 했다. 두 번째로 모든 건물에 대해 가이드 투어를 통한 입장만을 허용했다. 건물을 돌아보는 동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점은 좋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점이 문제였다. 게다가 생각보다 가이드의 영어 실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발음을 알아 먹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부 사진 촬영을 할 수 가 없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원래 계획은 돌마바흐체 궁전 구경이 끝나고 군사 박물관을 구경 한 뒤 내려와 탁심 광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마바흐체 궁전 구경이 끝나니 이미 한시가 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호스텔에서 아침을 주지 않아 아침도 굶은 상태였다. (물론 터키시각으로 새벽 3~4시쯤 기내식을 먹긴 먹었지만…) 일단 뭘 먹고 봐야 했다. 탁심 광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스탄불은 신시가지도 길이 잘 정비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는 길이 조금 헷갈리긴 했으나 어찌됐건 탁심 광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맛집 중 적당히 가까이에 있는 곳을 골랐다. 규베치를 먹었는데 추천요리라 기대한 것 치고는 별로였다. 아니면 아직 양념이 잔뜩 배지 않은 담백한 고기 맛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걸까?

 

그래도 먹으니 기운을 좀 되찾는 느낌이었다. 고민하다가 바로 내려가기보다는 군사 박물관을 구경하고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군사 박물관은 특이하게도 카메라를 들고 들어갈 경우 추가 요금을 받았다. 나는 추가 요금이 아까워서 카메라를 입구에서 맡겼다. 군사 분야 관련해서 전시품이 많긴 많았는데, 뭔가 체계적인 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동선도 조금만 더 잘 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부분은 그냥 스쳐가며 보았지만,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 내용만큼은 주의깊게 보았다. 또한 시간이 맞아서 보게 된 오스만 메흐테르 군악대의 연주도 괜찮았다.

 

4시가 조금 넘어서 군사 박물관을 나왔다. 이제 남으로 계속 걷기 시작했다. 줌후리예트 거리를 따라 탁심 광장에 되돌아왔다. 다시 이스틱클랄 거리를 따라 남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란 별명답게 유명한 상점도 눈에 많이 띄었고, 유동인구도 강남역을 뺨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인파를 헤치며 쉬지 않고 걸었다. 중간에 잠깐 우연히 보인 성당에 들른 것을 빼고 계속 걸었다.

 

터키는 날이 금방 어두워졌다. 5시 반쯤부터 이미 밤 분위기였다. 거기에 나의 좌절을 또 더한 것이, 마지막으로 가고자 한 곳 앞에 또 긴 줄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갈라타 탑이었는데 줄이 꽤 길었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가 탑 위의 경치가 그렇게 멋있질 않았다. 아예 스카이라인이 화려한 대도시이고, 탑 높이가 좀 되었다면 야경도 멋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이스탄불과 갈라타 탑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45분을 기다려 탑 위로 올라가 15분 경치를 보았다.

 

갈라타 탑을 나오니 어둠이 완연했다. 원래 나의 계획은 갈라타 탑 구경 후 갈라타 다리 아래로 내려가,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날이 너무 어두웠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은신처(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내 여행 원칙 중 하나다. 고등어 케밥을 포기한 채 카라쿄이 역에서 트램을 타고 숙소로 되돌아왔다.

 

술탄아흐멧 역에서 내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도이도이라는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종업원이 식사 전에 나오는 빵의 가격이 100리라라는 등의 농담을 하는 등 유쾌한 저녁식사긴 하였다. 거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로 되돌아와, 일지를 쓰고 잠을 청했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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