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
고민을 많이 했다. 삼성그룹에서 채용 합격 통보를 받은 뒤, 주변에서 가장 많이 추천했던 것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여행이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2011년에 유럽에서 받았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특별히 강렬하게 가고 싶다고 끌리는 곳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빚을 내는 것 또한 뭔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그리고 정말로 장거리 여행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나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 다음은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 문제였다. 가장 가고 싶다고 느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서부, 터키, 싱가포르 등의 후보지 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호주가 사실 1순위였으나 12월경 발생한 유학생 피습 사건으로 후보 목록에서 완전히 지웠다. 터키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이유는 적당한 거리가 있는데다가(가까운 싱가포르 등의 경우 나중에라도 시간을 내는 것이 가능), 내가 아직까지 가 보지 못한 문화권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시기를 결정해야 했다. 면접 합격 통보는 10월 말에 났으나, 정작 최종합격 통보가 매우 늦어지는 바람에 나는 12월 초에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12월 말에 시간을 내어 갈 까 했으나, 대선 투표 문제 및 연말 송년회 등의 사이에 여행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신입사원 연수 일정이 1월 말로 결정되어서, 나는 1월 초에 여행을 가기로 하고 일정할 짰다.
준비는 순조로웠다. 여권은 2011년 말에 이미 만들어 두었고, 배낭과 가이드북을 새로 샀다. 예전에 2010~11년에 여행할 때 사용하던 써미트의 자이너 32도 매우 좋은 배낭이었으나 아쉽게도 단종이었다. 써미트사의 다른 배낭 중 적당한 것을 골랐다. 가이드북의 경우 내가 애용하는 '자신만만 세계여행' 시리즈 중에는 터키가 없었다. 서점에서 이것저것 비교를 해 본 뒤 Just go 시리즈를 골랐다. 사실 이용해보니 썩 좋은 선택은 못되었는데, 아무래도 Just go 시리즈의 태생상(Just go 시리즈는 일본책의 번역서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외에 지르사의 쉐이빙 젤을 하나 샀다. 산 이유는 다른게 아니고 기내에 반입이 가능한 사이즈(100ml 이하)로 나온 쉐이빙 용품이 그거밖에 없었다!
출발일인 1월 1일에 집에서 뒹굴다가 짐을 챙겨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근 1년 반만의 인천공항이었다. 미리 인터넷을 통해 환전신청한 외화를 받고(TRY로는 직접 환전이 불가능해서 USD로 받았다.), 체크인을 했다. 비교적 일찍 한 편이었는데도 비상구열 좌석을 확보할 수 없었다. 대신 직원은 나에게 이코노미 클래스 맨 앞줄 좌석을 주었다.
터키항공은 서비스가 굉장히 좋았다. 가장 기본적인 담요와 치약, 칫솔뿐만 아니라 안대, 귀마개, 슬리퍼, 립밤을 제공했고, AVOD는 터치스크린에 영화 수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졸릴 시간이라(비행기 출발 시각이 자정이었다.) 잠을 자느라 영화는 많이 보지 못했다.
14시간의 긴 비행끝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입국심사관은 나의 얼굴도 보지 않고, 단 한마디도 묻지 않은 채 동료와 잡담을 하며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밖으로 나와서 환전을 하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어차피 주요 관광지 근처이기도 하고, 또한 시간이 매우 일렀기 때문에(공항에서 나온 시각이 아침 6시경이었다.) 숙소에 들러 짐을 두고 여행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있는 술탄아흐멧 역에 도착하니 7시였다. 밖은 여전히 깜깜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예약한 신밧드호스텔에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잠시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나왔다. 체크인을 미리 하고, 바로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오전 9시에 하는 간단한 설명회를 듣고 갈 것을 권했다. 그래서 다시 로비에서 기다렸다. 로비에 있는 PC로 인터넷도 좀 하고, 다시 한번 가이드북을 보며 일정을 짜 보았다. 그리고 9시, 사장님의 이스탄불 여행 설명회(?)를 듣고 10시쯤 드디어 나는 터키 여행의 첫 여정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