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19

 

교환학생 네 번째 여행은 2월 19일, 장소는 리스본으로 정했다. 사정이 생겨서 개강 넷째주가 되어야 나만의 여행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아침에 또 아슬아슬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8시 비행기였고, 아침에 일어난 시각은 5시였다. 하지만 아침을 먹으니 어느덧 6시가 넘었고, 기숙사 앞의 역에서 기차를 탄 것은 6시 반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있는 동안 7시가 넘어가자 슬슬 불안해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냅다 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다행히 아침이라 그런지 카운터도, 보안검색대도 줄이 길지 않았다. 7시 반까지 무사히 게이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탑승을 했다. 사람들을 보니 의외로 많은 이들이 여권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국제선인데, 일반 신분증만을 가지고 타는게 신기하긴 했다.

 

비행기 안에서 졸다 눈을 뜨니 리스본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시차가 한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시간은 아직 8시 반이었다. 입국심사 같은 것은 없었고, 이번 여행부터는 짐 부치기도 귀찮아서 쉐이빙 크림 등 걸릴만한 것은 죄다 배낭에서 빼버렸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배낭을 들쳐메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여행정보센터에서 지도를 한 장 챙기고 공항 앞에 서 있는 공항버스를 탔다.

 

호시우 광장에 내리며 리스본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바이샤 지구를 관통해 코메르시우 광장까지 걸어 내려왔다. 리스본의 풍경은 지금껏 가본 곳들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도시의 정취를 느끼며 광장에 서서 기마상과 테조 강을 바라보았다. 테조 강은 꽤 넓어서 처음에는 바다로 착각했다.

 

다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푸른빛을 받지 못한 강물은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우산을 들고 있어야 했기에 사진을 찍는게 매우 여의치 않았다.

 

벨렘 지구로 향했다. 트램을 처음 타 보았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가격이 버스에 비해 비쌌다. 그렇다고 빠른 것도 아니었고, 승차감도 덜컹거림이 심해 별로였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에서 내렸다. 수도원 앞으로 가니 딱 문을 여는 시간인 10시였다. 학생할인이 되질 않아 7EUR 그대로 냈다. 처음에는 왜 7EUR이나 받나 입이 나왔지만 내부에 들어서니 불만은 쑥 사라졌다. 섬세한 조각들, 내부의 정원등이 지금까지 봐왔던 성당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밖에 나오니 빗줄기가 굵어졌다. 수도원 맞은 편의 발견 기념비를 구경하러 갔다. 그런데 강바람이 너무 쎘다. 우산을 지면과 수직으로 들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비의 사진을 찍어보기는커녕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힘들었다.

 

가이드북에는 벨렘 탑이 발견 기념비에서 1km쯤 떨어져 있다 길래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발견 기념비까지 와서 보니 벨렘 탑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오기로 비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슬슬 우산이 커버하지 못하는 다리 부분은 축축해지기 시작했고, 신발도 물웅덩이를 실수로 몇번 밟으며 물에 흠뻑 젖었다.

 

벨렘 탑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여기서도 강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탑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탑 내부를 볼려면 5EUR을 내야 했다. (여기도 학생할인이 없었다.) 그만한 돈을 내고 볼만한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들어가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되돌아왔다. 일단 호시우 광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1시 즈음 자리를 일어나 이번엔 동쪽으로 알파마 지구로 향했다. 먼저 대사원에 들어갔다. 여태까지 보았던 대사원과 크게 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입장이 무료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았다.

 

비가 그쳤다! 거리의 사람들이 더 이상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나도 우산을 접었다. 중간중간 보슬비가 다시 내리긴 했지만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비는 완전히 그쳤다. 우산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드디어 사진을 찍기가 좀 편해졌다.

 

대사원에서 조금 더 걸어 알파마 지구 깊숙히 들어서자 게임에서나 봄직한 거리가 나타났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언덕과 계단으로 이루어진 좁다란 골목길들……이국적인 풍경이었지만 계속 가다 보니 이쪽이 상 조르제 성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방향을 돌려 대사원으로 돌아가 다른 길로 들어갔다.

 

이번에 선택한 길은 옳았다. 상 조르제 성으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보였다. 중간에 난간에 서서 알파마 지구를 바라보았다. 예뻤다. 특히 분홍색 지붕들이 너무 예뻤다.

 

상 조르제 성으로 들어갔다. 비는 완전히 그쳤고 하늘을 쳐다보니 푸른 빛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더해지자 리스본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했다. 성 위에서 리스본 풍경을 바라보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성을 한바퀴 둘러보고 성 안의 자그마한 박물관도 구경했다. 옛날에 선사시대 주거지였나, 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에서 특이한 점으로 성 안에 공작이 몇 마리 있었다.

 

성 구경을 마치고 기념품을 샀다. 성 아래쪽에 있는 장식 박물관에 들어갔다. 주제가 장신구보다는 인테리어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사람이 적어서 한가한 느낌 속에서 옛 귀족들의 생활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서쪽의 바이로 지구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아침에 지났던 바이샤 지구를 다시 지나가야 했다. 다시 본 바이샤 지구는 사람도 억이 비만 내리던 모습과 달리 활기가 넘쳤다. 오후이고 비가 그쳐서 그런지 꽤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를 탔다. 공항버스 티켓을 이용해 공짜로 탈 수 있었다.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탈때는 왜이렇게 비싸나(3.5EUR) 투덜댔는데, 막상 값어치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로 올라가 다시한번 리스본의 경치를 구경했다.

 

바이로 지구로 넘어와 정처없이 걸었다. 특별히 다른 곳과 다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걸어가다가 중간에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으로 빠지는 길이 있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급격한 내리막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니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아직 5시가 안됐다. 사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 근처에 포즈 궁전이 있길래 거기를 가 보려 했다. 그런데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라 그냥 상업 건물로 개조된 것 같았다. 가볼 만한 곳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걸었다. 이번에 걸은 곳은 리베르다데 거리였다. 대로 한가운데 광장을 조성해 놓은 것이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과 비슷했다. 다만 나무는 훨씬 많았다.

 

리베르다데 거리까지 한번 걷자 5시 반이 되었다. 조금 일렀지만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더 볼 곳도 마땅치 않았고, 하루종일 비바람을 맞으며 걸었더니 당연히 피곤했다. 리베르다데 거리 동쪽 산토 안탕 거리에 먹을만한 곳이 많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딱히 마음에 드는 가게가 없었다. 게다가 호객행위가 굉장히 심했다. 개중에는 나를 일본인인 줄 알고 부르는 소리도 있었다. 대충 한 가게에 들어가 정어리구이와 맥주를 시켜 배를 채웠다.

 

그렇게 리스본에서의 첫날을 끝냈다. 숙소로 들어오자 나는 피로감에 씻고 나서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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