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5
스페인 세 번째 여행지는 2월 5일에 간 세고비아가 되었다. 그 주 일요일에도 마드리드에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토요일날 가까운 곳으로 골라 여행을 가 볼까 생각중이었다. 세고비아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같은 레지덴시아에 사는 학생들이 세고비아 여행을 제안해서, 같이 따라가게 되었다.
여행기를 결론부터 시작하는 것이 뭣하긴 하지만, 여행 갔다온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 세고비아가 좋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고, 다른사람들과 같이 여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뜻이다. 총 10명이나 되는 일행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보다 의사결정이 느리고(여기서 의사결정이란 어디를 갈 것인지, 어떤 길을 택하면 되는 것인지 등을 의미), 움직이는 속도가 느린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왜 몇시까지 모이자고 해놓고서는 제시간에 모이질 않는지 모르겠다. 답답했고, 너무 피곤했다. 얼추 반나절이면 끝났거나, 아니면 훨씬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었음에도, 네 군데 밖에 보질 못했고, 마드리드로 돌아온 시각은 늦은 밤(오후 9시)였다.
아무튼, 여행은 오전 8시에 기숙사 앞에서 모여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일행은 한국인 네명에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한명 총 6명이었다. Cercanias를 타고 Principe Pio역으로 갔다. 세고비아행 버스는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서둘러서 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출발 직전에 표를 끊고 올라탈 수 있었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인지 버스가 출발하자 말자 졸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한시간이 지나 있고 세고비아에 도착해 있었다.
다들 아침을 일찍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고 해서 터미널에 있는 카페에 일단 들어가게 됐다.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시키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빵이나 토르티야 또는 커피 등을 시켰다. 약 30분가량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조금 늦게 도착한 다른 일행들을 맞이했다. 10시 반에 도착하는 버스에서 네명이 더 내렸다. 일행은 열명이 되었다.
이동을 시작했다. 로마시대 수도교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산 미얀 교회가 처음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는 곳이 되었다.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차로 한 시간 떨어진 곳임에도, 풍경이 많이 달랐다. 각 지역마다 다른 풍경들을 구경하는 것은 스페인 여행의 또다른 재미인 것 같다.
약 10분쯤 걸어가자 로마시대 수도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세고비아의 상징이라 할 만 했다. 약 3층 높이에 뻗어 있는 다리는 위용이 넘쳤다. 구조물은 2000년이나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고, 깔끔해 보였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계단을 올라 세고비아의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마요르 광장과 대사원이 보였다. 스페인에 와서 사원들을 많이 보게 되긴 하는데, 비슷비슷한 것 하면서도 각각 나름의 특색이 있는 것 같다. 세고비아의 대사원은 내부는 다른 사원들과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외관이 상당히 멋있었다.
사원을 구경하고 나오니 시간이 열두시가 넘어 있었다. 각자 알아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흩어졌다. 나하고 한 네명쯤이 마요르 광장에서 난 한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세고비아는 도시 자체는 작아 보였는데,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도 꽤 많았고, 상점들도 많았다.
점심은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결국 한 바에 들어가서 Tapas를 시켜 먹었다. 사실 가격이 비싸서 그렇지, 맛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점심을 먹고 모이기로 한 광장으로 돌아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직 보이질 않았다. 우리도 모이기로 한 시각보다 30분이나 늦긴 했지만, 어쨌든 다른사람들은 더더욱 나타나질 않았다. 한 30분 정도를 광장에서 사람을 찾는데 허비하고, 2시 15분쯤에서야 다시 모여서 이동을 했다.
알카사르로 갔다. 세비야와 코르도바에서도 알카사를 봤지만,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는 느낌이 또 달랐다. 이곳은 정말 으리으리한 성의 느낌이 들었다. 디즈니의 백설공주의 배경으로 쓰였다는데, 그 이미지가 은연중에 남아있어서였을까? 알카사르의 내부도 안달루시아에서 봤던 것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무기고라든가, 포병박물관 등도 흥미로웠다.
나는 표를 살 때 일부러 알카사르 타워로 올라가는 것은 끊지 않았다. 올라가서 보는 세고비아의 풍경이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서, 2유로라도 아낄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알카사르 내부 구경이 끝나고, 다른사람들은 모두 타워로 올라가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알카사르 앞에 조성된 작은 공원을 조금씩 둘러보고, 기념품 가게도 잠깐 구경하고, 그리고 남은 시간은 벤치에 앉아 가져온 가이드북을 조금 읽어보았다.
사람들이 알카사르에서 나왔다. 어느덧 네시 반이 되었다. 우리들은 이제 버스터미널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다시 저녁을 먹으러 흩어졌다. 저녁도 바 한군데를 골라서 들어가 Tapas로 배를 채웠다.
여섯시에 수도교가 보이는 광장앞으로 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이 제때 나타나질 않았다.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도 정말 지쳐갔다. 잠깐 모였다가, 다들 좀 모였다 싶으면 뭘 보거나 산다고 다시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새 시간은 7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슬슬, 아니 빨리 마드리드로 돌아갔으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느긋하니 답답했다.
슬몃 물어보니 수도교에 혹시 불이 들어오나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수도교 근처에서 조명장치는 본게 아무것도 없는데 왠 불? 그래도 뭘 어찌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냥 답답과 체념속에서 가만 있는데 어디서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났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도교 앞 광장으로 와 춤을 추었다. 춤을 추시는 분들은 주로 할머니들이셨고, 악기만 젊은 남성들이 연주했다. 사실 춤이라기보다는 율동에 가까웠고, 그나마도 잘 맞질 않았다. 멜로디도 단조로웠다. 그래도 신기했다. 흥도 느껴졌다.
한 십여분간 춤판(?)을 벌이신 뒤 사람들은 다시 퇴장했다. 7시 10분쯤이었다. 다행히 우리들 사이에서도 이제 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버스터미널로 갔고, 7시 반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