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21

 

스페인에서 두번째 여행 목적지는 세비야·코르도바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나의 여행 원칙대로 먼 곳에 있는 도시들 중 어딜 먼저 갈까 하다가 적당한 코스가 떠올라 이렇게 정했다. 그것은 야간버스로 세비야로 이동, 오전에 세비야를 보고 저녁무렵 코르도바로 이동해 도착, 코르도바에서 1박하고, 다음날 코르도바를 보고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그라나다도 묶고 싶었지만, 개강 전 마지막 일요일을 푹 쉬고 싶었던데다가 그라나다는 나중에 주말에 1박 2일로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1월 20일 자정, 마드리드에서 세비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야간버스이니 잠이 잘 올리는 없었다. 첫 세시간 정도는 제대로 잠을 잤지만, 중간에 휴게실에 들른 뒤부터는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6시에 세비야에 도착했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주요 관광지는 9시~10시 사이에 문을 여니까, 터미널에서 조금 자다가 나가려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이라 그런지 난방도 없었고, 자동문이 열려 있어서 밖의 찬바람이 그래도 들어왔다. 게다가 나는 이때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있지 않았었다. 오기 전 세비야의 날씨를 확인했을 때 15도/9도 가량이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얇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세비야의 아침은 추웠다. BBC에 속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세비야 버스터미널은 의자도 꽤 불편한 의자였다. 딱딱했고, 개별로 분리되어 있고 팔걸이마저 꼬박꼬박 있어서 여러개를 차지하고 누울 수가 없었다. 의자에 대충 앉아보았지만 어떻게 자세를 잡아도 잠이 오질 않았다. 오히려 앉아 있으면 더 추운 느낌이었다. 앉았다, 일어나 돌아다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7시 반쯤 터미널을 나왔다.

 

하지만 바깥은 더 추웠다. 뭘 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바에 들어가 아침을 먹고 따뜻한 커피에 몸을 좀 녹였다. 약간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가게를 나와, 강변을 따라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황금의 탑을 지나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까지 도착했다. 어느덧 시각은 8시 반이 넘어섰고, 슬슬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이곳의 공원은 키 높은 야자수와 감귤나무가 많았다.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또다른 정취가 느껴졌다. 남쪽나라의 느낌이랄까나? 세비야의 풍경도 마찬가지로 사뭇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독특한 모양새의 건물들은 나의 시신경을 자극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세비야의 거리는 걷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공원 구경을 마치고 알 카사르로 가는데 조금 헤메어, 알카사르에 여는 시각인 9시 반이 되어야 도착했다. 곧바로 입장했다. 막상 바깥의 거리가 특이하다가 보니 알카사르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라베스크 문양의 방들도 독특했고, 정원도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30분가량 구경을 하다 나왔다.

 

대사원을 여는 시각인 11시까지는 아직 한시간 가량이 남았다. 그래서 황금의 탑에 가기로 했다. 아까 어두컴컴해서 찍지 못한 사진을 찍고,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안은 항해 관련 박물관이 자그맣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별로 볼만했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사원으로 돌아가 입장했다. 이곳 대사원도 꽤나 볼만했다. 높게 솟은 기둥과 화려한 스페인드 글라스, 그리고 벽 곳곳에 걸려있는그림들이 인상깊었다. 연결되어 있는 히랄다 탑도 올라갔다 왔다. 바깥에서 탑을 바라봤을 때의 모습도 멋졌지만, 탑 위에서 바라본세비야의 경치도 멋있었다.

 

세비야 관광이 대충 끝났으니 발걸음을 다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코르도바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약 두시간 정도 남았다. 남은 약간의 시간을 보낼 장소로 주립미술관으로 정하고 미술관으로 갔다. 간단히 미술관 구경을 한시간 가량 하고, 터미널로 다시 돌아가 코르도바행 버스를 탔다.

 

여기의 시외버스들이 대개 그렇지만, 직행버스가 많지 않다. 그래서 정확한 곳에서 내리는 데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다. 다행히 스페인어 실력이 약간씩 붙어서 "Es aqui Cordoba?"등의 질문을 구사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무사히 코르도바에 도착했다.

 

코르도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 일단 내일 탈 마드리드행 버스표부터 끊었다. 그리고 터미널을 나와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방향감각이 서질 않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는데, 태양을 보고 방위를 잡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곧 방향을 잡았다.

 

관광지가 몰려있는 과달키비르강 근처까지 왔다. 아직 날은 어둡지 않아서 로마교를 보고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한번 건너갔다 왔다. 유서깊은 다리라는데 나는 느낌이 잘 와닿지 않았다.

 

저녁을 먹었다. 역시 이곳은 저녁시간이 달라서(스페인은 점심을 2시 부근, 저녁을 8시 부근에 먹는다) 6시 반이었지만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추천메뉴 중에 골랐는데, 햄과 달걀에 토마토 크림 소스를 섞은 것이었다. 토마토 소스가 너무 시큼해서 다 먹는데 힘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에 나온 양을 봤을때는 간에 기별이나 갈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배는 불렀다.

 

7시였다. 시간이 아직도 조금 남았다고 생각했다. 근처의 포트로 광장까지 갔다왔다. 그다지 별로 볼 것은 없었다. 빠른 속도로 거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숙소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약을 안하고 당일치기로 숙소를 잡은 것은 이번 여행이 처음이어서 사실 가는 도중에 조금 걱정을 했었다. (예약을 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카드결제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방은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극심한 피로가 밀려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전날 자정부터 대단한 강행군이긴 했었다. 서둘러서 씻고 일지를 완성하고 잠을 청했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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