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4
교환학생으로 여행하면서 가장 큰 장점은, 여유인 것 같다. 그 이전까지 나는 시간과 경비를 아끼기 위해 매우 빡빡한 여행을 했다. 거의 8 to 6,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쉼없이 돌아다녔고, 저녁때 이제 갈만한 곳이 없어지면 숙소로 돌아와 씻고 일지를 쓰고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잤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밤에 술도 마셨고, 일어나기도 여덟시가 되어야 일어났다. (보통은 7시였다. 그래야 면도하고 8시정도까지는 나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침 9시에 준다는 아침도 챙겨먹고, 거의 9시 반이 되어야 숙소를 나섰다.
첫 목적지는 성가족 교회(Sagrada Familia)였다. 민박 주인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고 했는데, 나는 감을 잡고 걸어가는데 자신이 없었다. 결국 지하철역으로 다시 돌아와 한 정거장 거리이지만 지하철을 탔다. 요금은 1일권을 끊었으므로 별로 상관이 없었다.
성가족 교회는 듣던대로 대단한 건물이었다. 보는 순간 경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각종 조각상들.......성가족 교회만으로 바르셀로나, 아니 스페인에 올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가이드북의 칭찬은 과찬이 아니었다.
지하의 전시실까지 관람을 마치고, 성가족 교회를 뒤로 한 채 산타 크레우 병원으로 갔다. 가이드북에 없었지만, 민박 주인이 말을 해서 가우디 거리를 약 5분정도 걸어서 보러 갔다. 그런데 공사중이었고, 외관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어차피 구엘 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그 병원 앞으로 가야 했으니 상관없었다. 말해준 노선의 버스를 탔다. 버스 노선도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로 버스를 탔다. 다행히 민박 주인이 알려준대로 대형 주자창이 나오고 그 다음 정류장서 내리자 구엘공원이 바로 있었다.
구엘 공원에서 제일 독특했던 점이라면 역시 독특한 조형물들 이었다. 또한 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르셀로나의 풍경을 내려다 볼 수도 있었는데 그 풍경 또한 멋졌다. 공원 가우디에 있는 가우디 박물관도 구경했다. 가우디가 예전에 살았던 집이라는데 아담했고, 이런저런 소품들이 신기했다.
구엘 공원 구경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갔다. 가우디의 남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카사 칼벳을 보았다. 거리의 평범한 건물들 속에 있는 것들이지만 확 띄었다. 다만 들아가 보지는 못했다. 카사 밀라는 보수공사 중이었고, 카사 바트요는 입장료에서 오디오 가이드가 분리되지 않아 비쌌다. 카사 칼벳은 안에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게 가우디 일주를 마치고, 몬주이크 언덕으로 이동했다. 먼저 에스파냐 광장을 구경하고, 이후 걸어서 이동했다. 먼저 에스파냐마을(Poble Espanyol)을 보았다. 스페인 각지의 마을을 복원해 놓은 것이라는데, 나로써는 건물들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오히려 입점해 있는 가게들이 더 구경거리였다. 정말 다양하고 예쁜 기념품들이 많았다. 카페테리아도 꽤 있어서, 점심도 여기서 해결했다.
그 다음 카탈루냐 미술관(Museu d'Art de Catalunya)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에서 1층은 교회와 관련된 주제의 작품이 많아서 별로였다. 하지만 2층의 근·현대 미술 작품들은 볼만 했었다.
6시쯤 미술관을 나왔다. 바로 앞, 마히카 분수에서 펼쳐진다는 분수쇼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분수는 아직도 조용했다. 분수쇼 시간이 6시인지 7시인지 헷갈려서 6시에 나온 것이었는데, 7시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미술관은 나와버렸고, 한시간동안 뭘 해야될지 판단이 안섰다. 몬주이크 언덕이나 조금 더 볼 생각에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던데다, 인적이 드문 길을 올라간다는 것이 약간 두려웠다. 게다가 볼 것도 많지 않아 보였다. 조금 올라가다 다시 미술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직도 6시 반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미술관 앞 계단에 앉았는데, 옆의 한국 여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덕분에 남은 30분은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7시가 되자 분수쇼가 시작되었다. 분수와, 음악과, 레이저가 어우러진 멋진 쇼였다. 나도 주변의 수많은 관광객들처럼 넋을 놓고 분수쇼를 바라봤다.
15분 가량의 분수쇼 1막이 끝나자 슬슬 숙소로 귀환했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서 나는 약간 가벼워진 느낌이 든 가방을 확인해보다가 카메라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을 해 보니 분수쇼를 볼 때 사진을 찍기 위해 난간에 올려놓았다가 그대로 둔 것 같았다. 급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어달라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20분이라는 시간 사이 카메라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너무 허탈했다. 아쉬웠다. 카메라 자체는 산지 5년이나 되어 고가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사진들은 뭔가로 보상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허탈과 자괴감(평소에 하지않던 행동 ---셔터속도가 나오지 않는 야간에 무리하게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스트랩을 걸지 않은 채로 무언가에 올려놓은 채 사진을 찍는---을 했고 그로 인한 실수로 카메라를 잃어버렸으므로)을 안고 지하철역으로 다시 터벅터벅 걸으며 돌아갔다. 역에서 우연히 같은 민박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이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합류했다. 길거리의 한 카페에서 피자를 먹고, 상그리아도 주문해서 마셨다. 상그리아가 특히 맛있었다.
나의 바르셀로나 여행은 그렇게 마지막을 안타깝게 장식한 채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잔 뒤, 이튿날 일찍 마드리드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7시간 동안 버스에 몸을 싣고 토요일 오후, 나는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