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3
이번 여행만큼 급박하게 결정한 여행도 없을 것이다. 물론, 교환학생으로 이루고 싶은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여행이었고, 대강의 계획은 짜 놓았었다. 계획의 요지는 학기 끝나고 2주 가량을 투자해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를 보고, 1주일 가량의 긴 부활절 휴가를 이용해 이탈리아를 여행, 그리고 주말의 빈틈을 이용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는 아직 구체적인 날짜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바르셀로나로의 여행을 급하게 결정한 것이었다.
결정의 이유는 당연히 시간이 남아서였다. 필요보다 스페인에 일찍 들어와서, 짐 정리 및 주변지리 확인을 끝내고도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바르셀로나로 정한 이유는 스페인 제 2의 도시이고, 거리도 조금 되고, 볼거리도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학기 시작하면 1박 2일 이상은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바르셀로나를 첫 여행지로 결정했다. 매우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어서 숙소를 이틀 전에서야 문의하고 하루 전에 입금을 했다.
여행 첫날, 마드리드 아토차 역으로 이동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기숙사를 나온 시간이 아침 8시였는데,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역에 사람이 되게 많았다. (아토차 역은 기차역과 교외선 역이 같이 붙어있다. 나는 교외선 역을 타고 아토차에 도착했었다.) AVE 티켓을 끊고, 열차 출발 전까지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아서 역사를 이리저리 구경했다. 역사는 꽤 컸고, 중앙에 실내 정원도 있는 멋있는 역이었다.
AVE에 올라탔다. 열차에 탑승 전에 짐 검색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AVE는 고속열차라 그런지 우리나라의 KTX와 느낌이 비슷했다. 그래도 바르셀로나까지는 생각보다 좀 걸렸다. 중간중간 300km/h도 찍는 것 같았는데 바르셀로나 도착까지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 도착하니 한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일단 역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카페테리아 비슷한 곳이었는데, 전시되어 있는 많은 메뉴중에서 고민하다 얼결에 하나를 고르고 받고 나서 영수증을 보니 그 메뉴가 파에야였다. 맛은 괜찮았었다.
첫 목적지로 정한 카탈루냐 음악당(Palau de la Musica Catalana)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는 시내 주요 교차로마다 관광지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서 가는 길을 찾기가 매우 수월했다. 티켓을 끊었다. 다행히 바로 20분 뒤에 영어 가이드투어가 있었다. 가이드투어가 시작되기까지 잠시 카페 안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때운 뒤, 입장했다. 먼저 30분 가량의 소개 영상 상영이 있었다. 카탈루냐 음악당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 건축가인 몬테나르, 그리고 음악당을 세우게 된 목적인 바르셀로나 합창단에 대한 얘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상 상영이 끝나고 내부 관람이 이어졌다. 공연장 자체는 아담했지만 멋있었다. 은은히 건물을 비추는 스테인드 글라스, 천장의 벽화들, 벽의 각종 조각상들...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카탈루냐 음악당을 나와서는 대사원으로 갔다. 고딕양식이 인상깊은 사원이었다. 한바퀴 둘러보고 근처 자치통령관으로 갔지만,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피카소 미술관으로 갔다.
사실 여행때마다 유명한 미술관에 가기는 가지만, 미술관에 왜 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미술 작품을 봐도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고, 영감은 오히려 박물관에서 더 많이 준다. 피카소 미술관도 그냥저냥 생각없이 둘러보고 나왔다. 게르니카가 없는게 좀 아쉬웠다.
방향을 계속 동쪽으로 잡아 시우타데야 공원(Parc de la Ciutadella)을 갔다. 가이드북에 상세설명은 나오지 않은 곳인데, 오히려 괜찮았었다. 비포장길이라는 점이 독특했고, 의외로 분수나 조형물들의 볼거리가 좀 있었다.
공원을 한바퀴 돌고, 항구로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수많이 배들인 접안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벨 항구(Port Vell)쪽으로 걸어서 선착장 끄트머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섰다. 뭔가 꼬집을 수는 없지만 그냥 좋은 기분이 들었다. 항구가 너무 좋았다.
항구 구경을 마친 뒤 시각을 보니 5시 반이었다. 아직 여유는 있다고 생각해 해양 박물관(Museu Maritim)을 마지막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입구에 현재 공시중이어서 임시 전시물들만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생각끝에 발걸음을 돌렸다.
파우 광장에서부터 천천히 람블라스 거리를 따라 걸어 올라왔다. 도로 한가운데 광화문 광장식으로 인도와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런저런 가판대뿐만 아니라 길거리 공연 등 볼 게 많았다. 가로등이 멋진 레이알 광장(Placa Reial)을 마지막으로 구경한 뒤에, 보카타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민박 주인과 다른 사람들이 술마시러 나간다기에 나도 따라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와 일지를 완성하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