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9

 

아침부터 당황했다. 안경이 보이질 않았다. 씻고 짐도 다 챙기고 나갈 준비가 다 되었는데 안경만 보이질 않았다. 룸메이트에 폐를 끼쳐가며 방에 불을 켜고 두어 번 수색했는데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초조했다. 기차시간이 꽤 이른 6시 50분이기 때문이었다. 초조함 속에서 침대를 한번 살짝 드는 순간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손을 넣어 만져봤다. 내 안경이었다.

 

서둘러 숙소를 빠져나와 지하철을 탔다. 미리 알아둔 대로 Penn Station역에서 내렸다. 기차역을 찾아가는데 너무 복잡했다. 지하철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기차역은 앰트랙 역이 아니라 LIRR역이었다. 계속 헤맸다. 열차시각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하를 일단 빠져나와 지상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앰트랙 역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바로 저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뛰어갔다. 자동발권기에서 잽싸게 티켓을 뽑아들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두어명의 친절한 직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기차에 탈 수 있었다. 정말로 출발 5분전이었다.

 

기차에 올라타서는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맸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아무 곳에나 앉으면 된다고 했다. 대충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아침부터 기운을 너무 많이 뺐다.

 

달리는 기차의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어제 취해 바로 자느라 쓰지 못한 일지를 썼다. 뉴욕을 벗어나자 흔히 생각하는 미국 교외 풍경이 나타났다. 구경하며, 글을 쓰며 네 시간을 보내니 보스턴에 도착했다.

 

아침에 허둥대느라 밥을 못 먹었으니 밥을 먹기로 했다. 아점이니 가이드북에 있는 맛집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또 길을 잘못 들었다. 한번 보스턴 외곽을 쭉 훑은 후에야 차이나타운을 거쳐 Ginza라는 일본음식점에 도착했다. 미국에 와서도 우동을 먹어보다니 묘했다. 그런데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보스턴의 첫 여행지로 JFK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JFK박물관에는 그의 생애, 업적, 유산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었다. 20분 가량의 소개 영상도 보고, 그 유명한 취임연설도 직접 보았다. JFK의 취임 연설은 전에 고등학생 때 영어선생님 덕분에 배운 적이 있었지만, 직접 영상을 보니 명연설이라는 느낌이 왔다. 박물관을 자세히 둘러보니 두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보스턴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소이자, 케네디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장소였다.

 

그 다음으로는 프리덤 트레일을 관광하기로 했다. 프리덤 트레일은 보스턴 시내 곳곳에 있는 17개의 역사 유적을 길을 따라가며 차례대로 구경할 수 있도록 연결해 놓은 길(?)이다. 맨 처음의 보스턴 커먼에서 시작해 주의사당을 한번 둘러보는 것으로 구경을 시작했다. 프리덤 트레일은 각 유적을 따라 가는 길이 길바닥에 빨간색 벽돌로 표시되어 있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쉬웠다. 중간중간, 가끔씩 끊길때도 있어서 가이드북을 펼쳐야 할 때도 있긴 있었지만, 대체로 빨간색만 잘 따라가면 유적에 닿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적들은 생각보다 별로 였다. 주의회 의사당이 그나마 제일 컸고 볼 만 했으며, 나머지는 묘지나 작은 옛 건물이어서 그렇게 감흥이 없었다.

 

프리덤 트레일을 도는 동안 중간에 퀀시 마켓에도 잠깐 들렀다. 그곳은 먹거리장터였다. 정말 여러가지 종류의 음식들이 모여 있었다. 다만 저녁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그런 곳에 들르니 너무 배가 고팠다. (미국 물가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꼭 필요한 지출 외에는 잘 하지 않았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애썼다. (여행기에는 고급레스토랑에 간 얘기가 나오지만, 여행기에 나오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패스트푸드점이나 간단한 빵류 또는 피자 한조각으로 때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프리덤 트레일 구경은 다 하지 않고, 찰스 강 건너의 유적 두개는 보지 않고 끝냈다. 아침의 안경 실종사건의 여파와, 배낭을 계속 메고 걸어서인지 굉장히 피곤했다. 또, 시간도 이미 다섯시가 넘어 있었다.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보스턴의 서쪽에 있어서 보스턴을 가로질러야 했지만(프리덤 트레일을 보스턴 가운데의 보스턴 커먼에서 시작해 동북쪽으로 이어진다.), 보스턴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라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숙소 근처에 우연히 버클리 음대가 있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대충 근처 맥도날드서 저녁을 때우고 유스호스텔로 기어들어갔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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