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17
제길! 잠을 제대로 못잤다. 괜히 역 근처 대로의 여관으로 숙소를 잡은 것을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밤새도록 차소음에 시달리며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다 결국 잠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악조건서 잠을 자다 7시쯤 일어났다. 배는 타야 했기 때문이다. 세면을 하고 얼른 그 지옥같은 여관서 나왔다. 편의점서 아침을 때우고 목포여객터미널에서 도초도로 가는 표를 끊으며 본격적인 남해안 여행길을 시작했다.
그런데 9시쯤 배가 접안한 곳은 비금도였다. 잠시 당황했지만 일단 서남문대교를 건너 도초도로 건너간 뒤 계획대로 도초도 여행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서남문대교를 건너는데 햇볕이 따가웠다. 그래서 일단 선글라스를 꼈는데 순간 나는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는 계속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여행했다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다행히 건너편에 약국이 보였다. 그러서 일단 약국에 들러서 선크림을 사서 바르고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어서 남쪽 시목해수욕장까지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더위속에 걷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점, 수 Km가 짧은 거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방향을 수정해서 만년사로 향했다. 하지만 만년사도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가지고 있는 지도가 불완전해서, 이정표가 제대로 세워져있지 않아서 조금 헤매기도 하고, 논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길을 묻기도 하며 약 두시간 동안 걸은 끝에 만년사에 도착했다.
만년사는 작고 굉장히 조용한 절이었다. 가만히 마루에 앉아 쉬고 있으니 그저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왠지 나중에 머리를 식힐 일이 있으면 여기로 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스님 한분이 나오시길래 카메라를 내밀어 사진을 찍고 절에서 나왔다.
만년사에서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네시간 가량이 지나 있었다. 벌써 한시였다. 일단 아침의 약국에 다시 들렀다. 약방 할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선착장 부근 식당서 점심을 먹고 우이도로 가는 배를 기다렸다. 우이도는 오늘 얻은 관광안내도에서 발견한 섬이지만 왠지 끌려 가보기로 했다.
두 시 반쯤 우이도로 가는 배가 출항했다. 약 한 시간의 항해 동안 다도해의 섬들을 구경했다. 우이도는 도착해서 보니 꽤 작은 섬이었다. 섬에 아스팔트 도로도 없고, 길 자체가 좁고 구불구불했다. 논들도 잘 보이질 않았다. 이런 차이점들 때문에 도초도에서는 섬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농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면, 우이도에서는 정말 섬마을에 온 느낌이 들었다.
마을 입구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내려놓았다. 간단히 마을을 둘러보고 근처 돈목해수욕장도 구경했다. 해수욕장 반대편 끝 쪽에는 무슨 사구가 있다고 해서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바닷가의 암벽들을 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수욕장을 보니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안 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서 해수욕은 계획에 없어 준비가 되어 있질 않았고(당장 신발이 운동화였다.), 또한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이 그다지 깊질 않아 별로 끌리질 않았다.
그렇게 대충 우이도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다섯시가 되었다. 조금 이른 시각이긴 했지만, 많이 걸어서 피곤했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또 배가 없어 나갈 길도 없었기에 오늘 여행은 여기서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