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둘째날(이스탄불)
2013. 1. 3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 것 같았다. 전날 매우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 두시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원래 계획은 7시까지 자는 것이었으나 6시 반쯤 포기하고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씻고 나서 아침을 주기까지 남은 시간은 미리 이날 계획을 세우고 인터넷을 하며 때웠다.
아침을 먹고 호스텔을 나왔다. 오늘 목적지는 구 시가지였다. 전날 한번 크게 데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8시 반부터 길을 서둘렀다. 첫 목적지는 톱카프 궁전이었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9시에야 궁전에 도착했다. 다행히 기다리는 시간이 길진 않았다. 여기는 매표소도 여러 곳이고, 보안검색대도 관광객이 몰려오자 곧 추가로 개방하기 시작했다.
들어가자마자 하렘부터 구경을 시작했다. 여기 하렘도 별 특징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톱카프 궁전은 궁전 자체보다 건물 내부에 마련된 여러가지 전시들에 눈길이 갔다. 술탄의 의상, 각종 보물, 시계, 성의 유물, 각종 무기들까지......무기들의 경우 어제 구경했던 군사 박물관과 많이 겹치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나머지 전시들은 모두 흥미로웠다. 술탄의 의상이 생각보다 수수함에 놀랐고, 그렇지만 궁전에서 사용된 각종 장식품들의 화려함에 다시 놀랐다. 각종 전시를 다 보고, 천천히 제4정원까지 둘러본 뒤 궁전을 나왔다. 궁전을 다 둘러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어서 고고학 박물관으로 갔다. 먼저 입구에서 가까운 오리엔트 박물관을 둘러보고, 이어 고고학 박물관을 보았다. 고대시대의 각종 석판, 다양한 석관들, 트로이 유적의 유물 등 흥미로운 전시품들이 많았으나 양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뒤로 갈수록 싫증이 났다. 게다 동선이 완전 개판이었다. 중복해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을뿐더러 심지어 끝까지 걸어갔더니 막혀 있어서 다시 쭉 되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니 또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점심을 먹어야 했다. 술탄아흐멧 역을 향해 길을 따라 걷다가 식당 한 곳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리 혼자왔다고 해도 나를 문이 열릴때마다 찬바람이 직격하는 자리에 앉히는 것은 너무했다. 그래도 쉬쉬케밥은 맛있었다. 처음에는 소스도 없고 밋밋하다고 생각했는데 먹다보니 오히려 고기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어서 예레바탄 지하저수지로 갔다. 빽빽히 들어차 있는 기둥들이 새로운 지하세계의 모습을 보여줬다.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뛰놀고 있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소원 기둥에 소원도 빌었다.
그 다음으로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술탄아흐멧 1세 자미를 구경했다. 유럽에서 많이 보았던 대성당들과는 또 다른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기대가 커서 그런가, "와!"하는 경탄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자미 구경에서 특이한 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는데, 입구에서 신발을 담을 수 있는 비닐봉지를 주었다.
모두 구경을 마쳐도 4시가 채 되질 않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일단 오늘 그랜드 바자르까지 가 보기로 했다. 걸을까 트램을 탈까 고민을 했지만 좀 더 걷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마흐멧 2세 묘를 들르게 되었다. 분위기는 낮임에도 관을 열고 스켈레톤이 모습을 드러낼 듯한 음습한 분위기였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알수없는 감정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그랜드 바자르에 도착했다. 정말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는 물론 여행 다닐 때도 시장을 잘 안가는 편이지만, 그랜드 바자르 구경은 정말 재미있었다. 원래 무언가를 살 생각이 크게 없었지만, 터키가 가죽제품이 좋다는 말에 허리띠를 하나 구입했다. 곡절이 좀 있었는데, 나는 가격 범위로 우리돈 1~3만원 가량(약 TRY 15~40)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먼저 들른 가게 두 군데서는 가격을 물었을 때 처음에 생각보다 낮은 가격을 불렀고, 그건 나에게 "처음 부른 가격이 그렇게 싸면 대체 원가는 얼마야?"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나는 가격을 듣자마자 흥정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세 번째 들른 가게에서야 상점 주인이 이 벨트 진짜 가죽이라며 불에 타거나 쪼그라들지 않는 시범을 보인데다가, 처음 가격으로 TRY 45를 불러서 흥정을 시작했다. 최종 낙찰 가격은 30리라였다. 나는 여전히 흥정에 능숙하지 않나 보다. 절반도 못 깎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2만원대 좋은 허리띠 구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니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랜드 바자르 구경과 쇼핑을 마치고도 5시가 되질 않았다. 이미 왔던 거리를 또 왕복하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슐레마니예 자미를 갔다 오기로 했다. 슐레마니예 자미는 여러 모로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와 비슷했지만,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사원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둘째날 여정을 마무리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베야짓 광장을 거쳐 술탄아흐멧의 숙소로 되돌아왔다. 그 동안 식비를 너무 많이 들인 것 같아 저녁은 간단히 먹었다. 거리에서 파는 구운옥수수와 빵에 치킨을 끼운 샌드위치 비슷한 것을 사 먹었다.
이 날 느낀 것 중 하나는 터키 내에 있는 강남스타일의 대단한 인기였다. 예전에 보통 해외여행 때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을때, "I'm from Korea."에 대한 반응이 99% "North or South?"였다면, 지금은 거의 "Gangnam Style"이다. 아침에 아야소피아 광장에서 (양아치로 보이는 듯한) 애들 두셋이 나에게 접근하며 "강남스타일"을 외치며 말춤을 추며 다가온 적도 있고(물론 나는 무시했다), 심지어 길거리를 걷다가 강남스타일 노래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