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e Traveler

독일 서부 여행 첫째날(뮌헨)

땡그랑한푼 2014. 11. 23. 22:35



2011. 5. 29

 

내가 묵었던 호스텔의 수면 환경은 막장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하였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바에서는 밤새도록 음악과 소음이 흘러나왔다. 새벽녘에 방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술취해 방문을 두들긴 뒤 한 여자애가 답하자 작업을 거는(!) 사람마저 있었다. (참고로 남녀 섞여 있는 도미토리였다.)

 

그 외에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내 곁에 둔 짐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차피 내 이민가방은 무겁고, 게다가 끄는 순간 소리가 나서 시선을 모으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 방에 들어오거나 내 침대 근처로 오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호스텔이 싸긴 쌌다. 1박에 19EUR) 좀 더 안전하고 조용한 민박을 잡았어야 라고 계속 후회만 하며 침대에서 뒤쳑였다. 거의 한 네 시간 밖에 못 잔 것 같았다. 사실 이날 제대로 돌아다닌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어쨌든 7시에 일어나긴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우선 뮌헨 중앙역부터 들렀다. 이번 여행기간에 탈 기차들 중 예약이 필요한 것들을 예약을 전부 했다.

 

이어서 역 앞의 트램 정류장에서 트램을 타고 첫 목적지인 님펜부르크로 향했다. 정류장에서 어떤 사람이 도와줘서 쉽게 방향을 확인하고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님펜부르크까지는 15분 쯤 걸렸다.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걸어 조금만 들어가자 곧바로 연못과 함께 쭉 뻗은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외로 연못에 새들이 많았다.

 

아침 9시, 막 문을 여는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잽싸게 표를 끊고 입장했다. 먼저 궁전을 구경했다. 듣던대로 화려했고, 특히 미인화 갤러리가 인상깊었다. 단지 그림일 뿐인데 너무 예뻤다.

 

궁전 구경을 마치고 정원으로 나왔다. 근데 정원이라기보다는 그냥 숲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무들도 정원치고는 조금 울창한 편이었고 뭔가 인위를 가한 느낌도 거의 없었다. 한바퀴 돌며 파고덴부르크, 바덴부르크, 아멜리엔부르크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마차·도자기 박물관을 구경했다.

 

님펜부르크 성 구경을 마치니 어느덧 11시였다. 알테 피나코테크로 갔다. 일요일이라 입장료가 1EUR였다. 들어가니 지겨운 교회미술이 또 반겨주길래 팜플렛을 보며 교회미술이 전시된 방은 모조리 건너뛰었다. 세계적인 미술관이라는데 생각보다 커 보이진 않았다. 프라도 미술관보다도 작아 보였다. 관람이 거의 한 시간 반만에 다 끝난 것 같았다.

 

맞은 편의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들어갔다. 원래 이렇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몰아쳐 구경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1EUR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아까웠다.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아까의 알테 피나코테크보다 나았다. 동선이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었고, 작품도 흥미로운게 많았다.

 

노이에 피나코테크 구경까지 마쳐도 3시도 채 되지 않았다. 첫날 일정을 이 이상 생각해둔 게 없었기 때문에 약간 당황했다. 지도를 펼치고 생각하다가 북쪽의 개선문과 영국 정원을 가기로 했다.

 

일단 대로로 나와 다시 북쪽을 바라보니 멀리 개선문이 보였다. 솔직히 파리 개선문을 이미 보아서 그런가, 밋밋하고 좀 위용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국 정원에 들어섰다. 중국 탑을 찾아갔다. 그냥 원구단을 좀 닮은 듯한 건물이었다. 그것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주변에 펼쳐진 엄청난 술판(?!)이었다. 야외를 한가득 탁자들이 메우고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안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3시 반이었다. 남은 시간을 간단히 쇼핑이나 한 뒤, 빨리 저녁을 먹고(어쩌다보니 점심을 안 먹은 채 이때까지 빈속이었다)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마리엔 광장으로 갔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점들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이 주변 구경을 좀 더 하기로 했다. 일단 남쪽의 아잠교회를 가려 했는데, 찾는데 실패했다. 아니면 내가 보았던 공사중인 교회가 그것이었을려나? 어쨌든 아잠 교회는 보지 못하고 다시 마리엔 광장 쪽으로 올라와 장크트페터 교회를 보았다.

 

시간이 슬슬 네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고, 점심을 안 먹은 몸이었으므로 저녁을 지금 먹기로 했다. 유명한 맥주집인 호프브로이하우스를 갔다. 굉장히 넓고 사람도 많았다. 그곳에서 뻘쭘하게 혼자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앉았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 덕분에 맥주와 슈바인스학세를 시켰다. 그런데......학세 양이 너무 많았다. 사실 양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점심을 안 먹었던지라 다 먹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나온 양은 정말로 거의 2.5~3인분량이었다. 미리 귀뜸 좀 해주지! 게다가 주문을 받았던 직원은 먹는 것을 점점 힘겨워하는 나를 보며 "Don't give up!"이라고 약올리듯이 말했다.

 

그래도 거의 한시간 가량 쉬엄쉬엄 먹으니 어쨌든 다 먹어치울 수 있었다. 사실 슈바인스 학세의 맛 자체도 괜찮았다. 괜히 추천요리가 아니었다. 맥주도 굉장히 맛있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는 천천히 호스텔로 걸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