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e Traveler

그라나다 여행 첫째날

땡그랑한푼 2014. 8. 24. 22:50



2011. 3. 5

 

교환학생 여섯번째 여행지는 그라나다로 정했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저번에도 여행했었지만, 그라나다는 시간관계상 빼고 세비야와 코르도바만 갔다왔었기 때문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을 비롯한 유명한 곳이 그라나다에도 많았으므로 그라나다를 안 갈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많이 꼬였다. 아침에 밍기적대다가 계획했던 5시 반보다 30분 늦은 6시에 있어났다. 그래도 행동을 서두른 덕분에 한시간 안에 씻고 아침먹는 것을 마치고 7시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정작 일이 꼬인 것은 버스터미널에서였다. 미리 조사한 바로는 그라나다행 버스는 8시, 9시 반, 10시 반에 있었다. 그래서 8시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표를 끊으며 시간을 물어보니 정작 시간이 10시 반이라고 했다. "¿No autobus antes?(그 이전 버스는 없어요?)"라는 질문에는 "¡Diez y media!(10시 반이라니까요!)"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일단 10시 반 표를 받아들었다. 진짜로 10시 반 이전에는 버스가 없는 건지, 아니면 다 매진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예약도 하지 않고 제대로 알지도 않고 온 나를 자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려야 되는 시간이 무려 두시간 반이나 되었다. 밖에 나가서 마드리드 딴 데를 좀 볼까 하다가 그냥 눌러앉았다. 귀찮기도 했고, 굳이 여행직전 힘을 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이드북을 읽으며 미래 여행 계획이나 세웠다. 오늘 가는 곳은 그라나다인데 두뇌는 파리로 가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버스에 있는 시간이 애매했으므로, 10시에 터미널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다시 한번 식사를 했다. 버스 플랫폼으로 갔다. 옷을 일부러 얇게 입고 있어서인지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버스에 올라탔다. 이상하게 버스에서는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거나 모니터로 틀어주는 영화를 봤다. 비록 이어폰은 없었고 스페인어 자막을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한반도하고는 스케일이 다른 반도여서 그런지, 신기한 풍경이 많았다. 그리고 거대한 풍력발전소나 태양열발전소 단지도 인상깊었다.

 

다섯시간의 긴 여정끝에 그라나다에 닿았다. 터미널에 있는 여행정보센터에서 간단한 여행 설명을 듣고, 일단 내일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릿해서 방위를 가늠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작정 감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다행히 Urbano centro(도심으로)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라나다의 첫 풍경은 세비야나 코르도바와는 들랐다. 그곳에서 느꼈던 고풍이나 안달루시아 특유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중소도시의 삭막함이 느껴졌다. 약간의 후회도 들었다.

 

그냥 정처없이 걸었다. 사실 지도가 없었다. 가이드북의 지도는 버스터미널이 있는 도시 서쪽이 안 나와 있었고, 터미널의 여행정보센터에서는 지도를 돈을 주고 팔아서 사질 않았다. 그래도 여행짬밥(?)은 어디 안가나, 대충 이쪽으로 가면 시내가 나올 것이라고 걸으니 진짜로 시내가 나왔다. 슬슬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건물들의 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대사원부터 들어갔다. 그런데 분명 닫힌 시각은 아닌데,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입구쪽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옆에 붙어있는 왕실 예배당으로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3.5EUR이라는 가격이 나를 또 망설이게 했다. 결국 왕실 예배당도 들어가지 않고 나왔다.

 

그라나다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거리를 계속 걸었다. 독특한 모양의 시청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평범한 번화가만 계속 펼쳐졌다. 중간에 길을 바꿔 빙 돌아 다시 대사원과 왕실 예배당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왕실 예배당부터 들어갔다. 들어가서 금빛 예술품들을 보니 입장료에 대한 불만이 쓱 사라졌다. 이어 옆의 대사원도 곧바로 들어갔다. 스페인에 와서 성당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긴 하지만 그라나다 대사원은 느낌이 달랐다. 내부 도색이 흰색이어서 그런가 조금 밝은 분위기가 났고, 기둥들이 조금 더 굵고 인상깊게 느껴졌다.

 

대사원 구경을 마치고 누에바 광장 쪽으로 걸었다. 마침 시간이 6시여서 저녁을 먹었다. 의외로 밥 먹을 만한 곳이 꽤 되어 고민을 하게 했다. 대충 끌리는 대로 들어갔는데 뭔가를 시키니 고기, 밥, 샐러드, 감자튀김이 짬뽕이 된 게 나왔다. 그런데 맛이 괜찮았었다.

 

동양인이 신기하긴 신기한가, 나를 보고 또 japones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이번에는 coreano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기뻤다.

 

배를 채우니 기운이 다시 좀 생겼다. 위쪽의 알바이신 지구를 향해 좀더 걸었다. 그때까지와는 다른 고풍스런 풍경이 나타났다. 좁은 길, 시냇물, 그리고 냇물 건너편의 성벽(알람브라 궁전의 외곽 벽이긴 하지만)까지, 신기한 모습에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산타 아나 광장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간도 슬슬 7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고, 알바이신 지구의 언덕길을 올라갈 생각이 별로 들질 않았다. 알바이신 지구는 내일 알람브라에서 내려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에바 광장으로 되돌아와 숙소를 찾았다. 처음 점찍었던 곳은 방이 다 차 있었지만, PlanB로 생각한 곳은 방이 남아 있었다. 짐을 풀고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