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여행 (5) -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2011. 2. 27
다섯번째 마드리드 나들이는 2월 27일에 갔다. 어차피 방에 쳐박혀 있는다고 딱히 즐길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 다시 오기는 힘든 해외에 온 이상 주말에 한군데라도 더 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었다.
목적지는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으로 잡았다. 이유가 있었는데, 일요일에 늦게까지 문을 여는 미술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다른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일요일에는 3시 정도까지 문을 열었다. 문제는 프라도 미술관의 무료개관 시간은 일요일 5시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마땅히 박물관/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5시 정도까지 시간을 때울 만한 장소도 없었다. 그래서 티센 미술관에서 5시 정도까지 관람을 하고 곧바로 프라도 미술관으로 가서 저번에 하지 못한 관람을 마저 할 계획이었다.
점심을 먹고 1시에 기숙사를 나섰다. 아토차 역에서 내렸다. 이제 슬슬 솔 광장의 풍경뿐만 아니라 아토차 역 앞 거리의 풍경도 익숙해지고 있다. 미술관을 향해 걸었다. 날씨는 맑고 거리에 사람들은 꽤 많았다.
하마터면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 가방이 조금 뒤로 돌아간 상태에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약간 이상하단 느낌이 듬과 동시에 뒤에서 큰 소리로 "HEY!!!!!"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휙 돌리니 가방이 이미 반쯤 열려 있었다. 하마터면 여기 와서 새로 산 카메라를 한 달 만에 또 잃어버릴 뻔 했다. 소리를 질러주신 분께 "Gracias."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들어갔다. 3층부터 밑으로 내려오며 구경을 했다. 3층은 교회미술이 주여서 "또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2, 1층은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 미술이 채우고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했다. 특히 미술관들은 많이(?) 다니면서 점차 느끼게 되는 건데 나는 풍경화와 초상화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게 큰 미술관은 아니어서, 관람 후 세시간이 지난 다섯시가 되자 구경을 모두 마쳤다. 타이밍이 적당하다 생각하고 1분 거리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런데......줄이 너무 길었다. 저번에 프라도 미술관을 갔을때 다섯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관람을 마치고 나왔을 때보다 줄이 훨씬 길었다. 기다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이날은 날씨마저 조금 쌀쌀해진 상태였다.
결국 나는 프라도를 앞에 두고 다시 한번 다음을 기약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이날 이상하게 츄러스가 당겼기 때문에 쵸콜라테리아 산 히네스로 다시 한번 갔다. 거기서 츄러스와 쵸콜라테를 시켜 먹었다. 혼자 서서 먹고 있는데 종업원이 "おいしいですか?"라고 물어봐 기분이 나빴다. "No soy japones."라고밖에 응대를 안했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빴다. 제발, 아시안계라고 일본인 혹은 중국인으로 단정짓고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해외여행을 할 때 동양인을 봐도 확신이 없으면(한국어를 하는 것을 듣거나, 혹은한국어 가이드북이나 팜플렛을 들고 있는 경우, 한국어 팜플렛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에는 99.9% 없지만 일본에는 거의 대부분 비치되어 있어서 한국인인지 구분하는 요소로 쓸 수 있었다.)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지 않는 편인데, 여기 사람들은 무슨 근자감으로 단정짓고 물어보는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 종업원이 일본어로 얘기를 했을 때 듣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면 굉장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면 기분이 나쁘리라는 것은 생각을 못 하나? 그때 코르도바 버스터미널에 있는 바의 종업원처럼, 한·중·일 3개 국어를 모두 할 수 있어서 돌아가면서 물어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함부로 외국어를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페인어도 간단한거라면 알아먹고, 영어라면 오히려 편하다.
어쨌든 약간은 불유쾌했지만 츄러스와 쵸콜라테는 여전히 맛있었다. 먹어 치우고, Principe Pio역으로 가 필요한 것을 좀 사고, 기숙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