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여행 셋째날(비금도)
2007. 8. 18
둘째날에는 숙소를 잘 잡은 탓인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전날 9시부터 퍼자기 시작해 6시가 좀 넘어서 '꼬끼오!'하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이 섬에서 나가는 배는 아침 7시에 딱 하나 있으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잠시간이었지만 나를 잘 대해줬던 주인 할머니와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선착장으로 갔다. 아침에 안개낀 바다의 풍경도 왠지 멋져 보였다.
도초도에는 한 9시쯤 도착했다. 어제 들렀던 약국에 다시 들러 할아버지와 잠시 담소를 나누고 비금도로 향했다. 어쩌다보니 택시를 타게 됐다. 지도를 보니 일단 월평마을이 괜찮아 보여 일단 거기로 갔다. 그렇지만 실제 보니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돌담으로 쌓은 집들이 좀 있는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실망했다. 그래서 결국 다른곳도 둘러보게 되었다. 내월우실도 봤는데 역시 지도에 실린 것과 달리 별거 아니었다. 계속 관광지도에 속고 있었다. 그나마 하누넘 해수욕장이 명성대로 구경할만 했다. 다만 여기는 혼자 오고 싶은 데가 아니었단 데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대충대충 구경을 끝내고, 택시기사님의 만류에도 무릅쓰고 비금면사무소 근처에서 하차한 뒤 택시는 돌려보내고 가산선착장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게 앞으로 잘못될 일의 씨앗일 줄은 몰랐다. 한 십분쯤 걷고 있는데 갑자기 태워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래서 트럭에 얻어타고 가산선착장에 도착하니 10시 반쯤이었다. 5시간 가량을 썰렁한 선착장서 버틸 자신이 없던 나는 지도를 보고 성치산성이란 곳을 가보고자 했다. 폭염속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태워주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그래서 난 또 산성 근처 마을에까지 쉽게 도착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 길을 물어 보니, 성치산성을 가려면 여기서 더 들어간 다음 다시 등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그렇고, 시간도 충분하니 그냥 가기로 했다. 다행히 등산로(?) 입구까지는 길을 답을 해주신분이 태워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11시쯤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등산을 시작했다. 꽤나 힘들었다. 산에 키 큰 나무가 없어서 햇볕을 그대로 쬐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희미해지는 일사병 초기증세도 느꼈다-_- 다행히 중간에 바위구멍이 있어서 거기서 햇볕을 피하며 쉬었다. 충분히 쉬고 나서 등산을 계속했다.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지자 가파른 돌계단이 나를 막고 있었다. 이 더위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무리해서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아 결국 발길을 돌렸다. 산성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멋진 비금도의 풍경을 산 위에서 바라본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왔다.
마을로 내려오니 더 강한 햇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기운을 다 빼버려서 그런지, 아님 오늘 더위가 더 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걸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론은 다시 Taxi~ 오늘은 정말 택시비만 엄청 쓰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택시를 타고 원래 계획했던 비금도 가산선착장이 아닌 도초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농협에서 돈을 인출하고, 이 작은 섬에도 있는 하나로마트에서 간단히 점심거리를 샀다. 오후 4시에 도초도를 떠났고, 5시에 목포에 도착, 6시에 다시 순천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여행 중 자기 집에서 잔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여로 중간에 순천이 있으니 괜히 숙박비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