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에서는 파야스 관련 내용만 적습니다. 발렌시아 여행 얘기는 발렌시아 여행기 첫째날, 둘째날을 참고해주세요.)

 

사실 J양에게 발렌시아에서 3월 중순쯤에 큰 축제가 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이런 유명하고 멋진 축제가 있는 줄 몰랐었다. 뭐, 워낙 유명한 축제여서 나중에 알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어쨌든 유명한 축제고 마침 절정인 3월 19일이 토요일이었으므로 주저 없이 이때 발렌시아에 가기로 했다.

 

정말 유명한 축제인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발렌시아에서 나는 처음에 투리아 공원 바깥쪽 시가지부터 보았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인파를 맨 처음부터 마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투리아 공원을 가로질러 구 시가지 쪽으로 들어가자 정말로 사람이 많았다. 몇몇 곳은 인파들이 뒤섞여 제대로 전진하는게 힘들 정도였다.

 

인형(니놋)들은 보통 쌍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큰 인형 하나, 작은 인형 하나. 보통 인형은 동화 속 캐릭터같은 모습의 인형이 많았다. 그리고 뒷면이나 측면도 신경써서 만든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연히 부서진 인형을 보았는데 목조 골격에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었다. 보고서는 좀 의아했는데, 왜냐하면 이것들은 나중에 다 태울 예정인데 스티로폼이라는게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인형들은 특정 지점에 설치된 게 아니라, 발렌시아 곳곳에 흩어져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많은 수의 인형을 보기 위해 발렌시아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꼭 무슨 게임 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임무가 주어지고 목표 달성을 위해 맵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처음에는 숙소 근처의 시가지에 있는 인형부터 보고 다니기 시작해서, 구 시가지로 건너가 북쪽의 세라노스 탑부터 남쪽으로 걸으며 인형들을 감상하고, 사진들을 찍었다. 구시가지 남쪽의 노르테 역에 도착해서 방향을 다시 북쪽으로 바꿔 올라갔다가, 다시 한번 시가지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거리공연팀도 굉장히 많았다. 잭 스패로우 선장, 로보캅, 에일리언 등으로 분장한 사람들부터, 난타 비슷한 공연팀이나, 심지어 사람들을 춤판으로 유도하는 팀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역 어린이들이 분장하고 펼치는 공연들도 있었다. 이러한 공연들은 파야스를 좀더 풍요롭게, 그리고 즐거운 축제로 만들어 주었다.

 

가판대도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나 많았던 가판대가 츄러스와 부뉴엘로를 파는 가판이었다. 좀만 걸어도 쉽게 볼 수 있었기에, 마치 인형 숫자만큼 츄러스 가판이 산재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츄러스는 마드리드에서 먹어본 적이 있으니 됐고, 부뉴엘로를 사서 먹어봤는데 그렇게 맛있지는 못했다.

 

전체적으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주는 분위기도 비슷하고, 나도 걸어다니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즐거운 느낌이었다. 심지어 엄청난 인파에 치이고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등, 놀이 공원의 안 좋은 점까지 좀 빼닮은 것 같았다.

 

한가지 거슬리는 게 있었다면 폭죽소리였다. 오후 두 시쯤에 한번 대규모로 폭죽을 터트리더니, 그 후에도 가끔씩 폭죽을 쏴 댔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낮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쏴댔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소리도 너무 컸다. 그리고 아이들이 길에다가 장난감폭죽을 던져놓은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펑!"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 밤 9시까지 인형 구경 및 발렌시아 관광을 마치고, 파야스의 핵심이자 절정인 인형 태우는 모습(크레마)을 보기 위해 시청광장으로 갔다. 인형 태우는 시각은 10시~12시쯤이 될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미리 가 있기로 했다. 반나절을 쉼없이 돌아다닌 탓으로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은 걷는게 고통스러웠고, 또 이때쯤부터 자리를 잡지 않으면 좋은 장소에서 보는 게 힘들 것 같아서였다. 막상 시청광장에 오니 바리케이트가 인형으로부터 꽤 먼 곳까지 밀려가 있었다. 그래서 바리케이트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지만, 인형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꽤나 오래도록 기다렸다. 10시, 11시, 12시가 지나가도록 태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1시에 잠깐 불꽃놀이가 있었고, 그 뒤로는 다시 조용했다. 원래 늦어도 자정에는 태울 줄 알았는데, 12시가 넘어도 인형은 건재하고, 오히려 1시에 태운다는 불길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1시가 되어야 태웠다. 덕분에 나는 무려 세시간 반을 추위와 무료함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시가 되자 불꽃 하나가 내려와 인형을 휘감은 뒤, 화려한 불꽃놀이를 다시한번 시작하며 인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진풍경은 긴 기다림을 보상하기에 충분했다.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과 거대한 인형이 내뿜는 화염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모습은 정말 인상깊었다.

 

불길은 20여분간 치솟더니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네 시간을 기다렸고, 저 인형이 만들어지고 설치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짧은 순간을 타오른 뒤 잦아드는 불꽃을 보며, 뭔가 알 수 없는 감상에 잠겼다.

 

사그라드는 불길을 뒤로 한 채 서서히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곤했지만 잊을 수 없는 하루, 잊을 수 없는 축제였다.






Posted by 땡그랑한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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